David Lanz - Cristofori's Dream
일기를 쓰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더운 휴일날, 컴퓨터를 정리하다 잠시 옛기억에 다녀온다.
그 시절... 눈동자에 맺혔던 투명한 번민아.
어디까지 온거니. 이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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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상
밤의 창색깔이 어린 개의 눈동자처럼 까매서일까
내 나이보다 많은 할머니방 자개농이 구석구석 서글퍼 보이고
더운 방에 졸린 탓이겠지. 큰 방에 건너 가
엄마가 사다 준 한약을 그릇에 담아 먹는데, 이 방도 너무 더운가
어쩐지 엄마의 무릎베개가 그리워진다.
"않돼, 다 큰 자식이. 일찍 자고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엄마는 빨리 내 방에 가 자라 한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마루에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막내누나가 늦겠다고 나보고 마중좀 나오라고 한다.
내 방을 향했다.
장농속의 회색 돕바를 꺼내 입고
방문을 열고나와 베란다쪽을 바라보는데,
비다!
아스팔트 드럼통같은 빈 거리에 온통 빗물이 번들거리고 있다.
우산을 받쳐들고 거리로 뛰쳐나간다.
하늘은 어둡고 날씨는 차다.
지금 이 시각, 비내리는 밤 거리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옛날 하루종일 찾아 기다려야 했던
그 날도 난 누구를 마중가고 있었는데
어두운 버스정류장. 그리고...
낮설은 하늘엔
찬 구름이 희멀겋게 얼어있고
멀리서부터 우산도 없이
비숲을 헤치며 찾아온 엄마.
달려온 붉은 손을 쥐고 하얀 김을 불어주던
엄마의 겨드랑이도 시렸을 거야.
김나는 내 머리를 회색빛 기다란 레인코트속에 감싸 안았을 때,
아린 귀가 엄마의 겨드랑이에 베겨 따듯했었거든.
아! 그때 엄마의 가슴에서 풍겨오는
초콜릿 화장품 냄새.
"엄마, 하자. 어디까지 왔니. 알지?"
얼굴을 올려다 보았을 때, 엄마의 까만 곱슬 머리카락은
오색빛 빗물 알갱이가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어디까지 왔니."
"집에 거의 다왔다."
"어디까지 왔니."
"집에 이제 다왔다."
어둡고 넓은 코트속으로 쪼그만 세상이 비쳐들었다.
"거짓말. 아직도 이렇게 멀었는데?"
"보면 어떻해?" 엄마가 웃었다.
더운 김을 너무 많이 뿜어대서일까
코트안이 따듯해졌다.
습기찬 얼굴로 코트자락을 열면
사라지는 김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들. 빗방울들.
그들은 땅위에 고인 물웅덩이에 모여 따듯했다.
까만 수은처럼 빛나며 약한 빗가루에도 흔들리는 진짜 거울.
이 세상에
물웅덩이에 비친 작은 가로등 불빛보다 더
맑고 고운 것은 없으리라.
......
지나치는 물웅덩이마다 형광등 불빛들이
떨어지는 비에 맞아 흐느적거린다.
누나가 나오라고 한 철로변 땡땡이가 가까워진다.
눈앞에 다가온다.
우산속에선 몇 개의 찬 공기가 지나고,
그러한 화면속에서 무언가 떨리고 있다.
여전히 하늘은 어둡고 날씨는 차다.
입에선 연신 김이 나와 빗물속으로 사라진다.
그렇지만 몸이 춥지는 않다.
찬 바람이 불고 날씨는 더 싸늘해도
몸이 춥지는 않다.
추운 건, 두터운 옷에 겹겹이 싸여 다 커버린 몸뚱아리가 아니다.
저 흔들리는 형광불빛에도 시린 건
나의 조그만 귀.
아리도록 그 어린 귓가에 울려대는
"어디까지 왔니?"
......
"어디까지 왔니?"
......
- 1992년 11월 9일 새벽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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